사진으로부터

소소한 경험담_길었던 여름 단편

꽃쉰 2020. 8. 27. 10:40
니콘df f/22 1/15 105mm iso100


離(리) 夏(하)/여름에게

해를 먹지 못한 날들이 많았지만
시간 만큼은 꼬박꼬박 먹었다.

덕분에 살이 피둥피둥 쪄서
단위당 면적은 늘어났다.

질량은
세월이 담아내지 못한 부분들로
채워내지만

한 여름 햇살 한 바구니가
뼈 무게보다도 견실함을
그는 알지 못했다.

바람은 비를 동반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마다
여름 자국이 새겨졌다.

기나긴 장마에 해를 본 날은 기억도 없다.
여기저기 곰팡이를 제거한다.

내게는 꽃물들인 종이 한 장 남았다.

아니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록가시 보송하게 밤톨이 자란다.

가을이 짙어갈 즈음
고놈의 가시는
오히려 밤톨을 지켜주리라
그렇게 기도하리라


이번 여름은 눈 뜨니 장마로 시작해서 장마로 끝이 난다.
모든 여름이 그런건 아니어도 어떤 여름은 그렇다는 걸 인정해야 겠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무슨 운명인냥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제습기를 여름내내 돌렸었다. 물바스켓을 뺄 때마다 꽤 무거웠고 꽤 많은 양이었다. 그걸 하루에 두 번이상 버리고도 밤에는 소음과 열감 때문에 꺼 두었다.

장마가 끝날즈음이 되니 햇살이 따겁다.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밀린 침구와 빨랫감을 세탁하느라 세탁기는 거의 이틀이상을 돌렸다. 여기저기 곰팡이 필 만한 곳을 찾아 약제를 뿌리고 닦아냈는데 한 번은 욕실의 콘센트에 물이 닿는 바람에 누전차단기가 떨어져 버려 하루종일 욕실을 말리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을 잘 챙겨서 보내주려 했다. 태풍이 두려워 베란다 창마다 잠금장치를 꾹꾹 하고 자야했던 지난 밤엔 올 여름들어 두 번째로 에어컨을 켰다. 아마 이번 여름의 마지막 에어컨 바람이 아닐까 한다.

해마다 똑 같이 오는 여름을 해마다 다르게 만난다.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은 삶의 시간을 누구나 다르게 만나서 다른 무게를 갖고 살아가게 된다.

아들은 이 집에 이사와서 거의 40센티가 자랐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자랄 것으로 보인다.
딸아이는 벌써 독립을 했다. 아들녀석의 독립은 더욱 기대된다. 녀석의 태명은 또치였다. 태어나 한참을 그리 불렀다. 한동안은 병원생활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 터라 지금의 모습은 거의 자랑스러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약한 모습이 많이 보여 엄마가 애간장이 탈 때가 많다. 모든 상황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근사한 독립을 기대한다. 오히려 불편하고 불리한 모든 상황으로 인해 더욱 단단한 마음과 인격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리라.

그리고 나에게 쓰는 한 마디!
"여름을 잘 견뎌줘서 고맙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