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과 냉대가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사이며 아주 비이성적인 논리임에도 편리를 누리는 쪽의 입장에서는 반론을 제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며 실제로 그것이 부당한가에 대한 어떠한 모순을 체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우리말에 ‘맞은 놈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놈은 편히 못 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사뭇 다름을 깨닫는 요즘이다.
‘히든 피겨스’는 미셸 오바마의 극찬으로 더 유명해진 영화이며 원작은 마곳 리 쉐털리(Margot Lee Shaetterly)가 출판한 동명의 책이다. 중심인물은 버지니아 주 햄톤(Hampton)에 있는 랭리 연구소에서 수학자로 근무했던3명의 흑인 여성 수학자들인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 메리 잭슨(Mary Jackson), 도로시 본(Dorothy Vaughan)으로 이들은 실존인물이다. 이 영화는 1960년대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이끌게 되었던 나사(NASA) 프로젝트의 숨겨진 천재들인 세 흑인 여성 ‘인간 컴퓨터’들이다. 초창기 살아 있는 컴퓨터의 메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존 글렌이 처음으로 지구 궤도를 비행한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을 도왔던 세 명의 흑인 여성들을 설명하는 논픽션 영화다.
주인공들은 흑인에다 여성이기에 누구에게서도 인간다운 존중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믿었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결코 순탄할 수 없는 그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풀어간다.
흑인여자아이가 커다란 칠판 앞에서 모든 배경을 사라지게 만드는 양 집중하며 하얀 숫자를 써 내려간다. 선생님은 이 천재 여자아이의 부모를 만나 아이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진지해질 필요를 설득하게 되고 아이의 부모는 곧 큰 결심을 하게 되면서 캐서린의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굉장한 일이다. 그들은 흑인이었고 게다가 여자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대해 긍정의 턴을 확정하게 되는데, 사실 이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주인공이 사는 곳이 미국이라는 점이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틀을 고수하고 있는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1970년대의 시골 마을에 살아야 했던 나는 앞집 언니가 단지 여자란 이유로 학교는커녕 거의 식모처럼 살아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장면이 바뀌면서 캐서린과 그녀의 동료들은 차량 고장으로 길에서 곤란을 겪는다. 지나가던 차량이 하필이면 경찰차다. 경찰이라면 그녀들에게 도움이 돼야 할 신분이지만, 그녀들은 오히려 난색을 표한다. 차별의 세상에서는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 할 찌라도 커다란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세 여성은 단정한 원피스 차림에 꽤 고급차를 가졌지만, 이 오래된 고물차는 걸핏하면 고장이 나서 그녀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커다랗고 고급스럽지만 고장으로 인해 늘 골칫거리인 자동차는 당시의 미국과 매우 닮아 있어 보인다. 보기엔 꽤 근사한 국가임에 틀림없지만 그 속엔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삶에서 불편과 부당함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경찰에게 자신들의 신분증을 보여 주며 자신을 증명하는데 그것은 NASA의 사원증이다. 그것을 확인한 경찰은 오히려 그녀들을 목적지까지 에스코트해 주게 된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영화의 주제와 결말을 제시한다. 분명 불합리하고 불편한 차별을 당하는 사회임에 틀림없지만 능력 있는 자에게 미국은 오히려 기회의 땅임을 제시함과 동시에 영화의 결말이 희망적임을 보여 준다.
천부적인 수학 능력자 캐서린은 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멀리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까지 뛰어다녀야 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마다 참석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커피 먹는 것조차도 공용을 사용할 수 없는 등, 주변의 모든 환경으로부터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차별된 것이 있었다면 그녀의 천재성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부적인 차별성이었다. 프로젝트가 난항을 거듭할 때 그녀의 차별된 천재성이 빛을 발한 것이다. 보석이 보석인 이유는 진흙 속에 있어도 진흙이 침범할 수 없고 오염되지 않는 것에 있다. 그녀는 좌절이라는 진창 속에 있었으나 그녀가 진정한 보석인 것은 좌절이라는 진창 속에서도 결코 오염되지 않는 긍정의 빛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천재성을 기꺼이 편견에 맞서 정면 돌파하기에 이르렀고 그녀의 탁월한 계산 능력으로 NASA의 프로젝트는 성공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NASA는 그녀에게 차별보다는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메리 잭슨은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상관은 말하기를 “자네가 백인남자였다면 엔지니어를 꿈꾸지 않았겠느냐.”라고.” 그녀의 재능을 살리기를 조언한다. 그때 그녀가 말한다. “그럴 필요가 없죠. 이미 됐을 테니까요.” 영화 속에서 그녀는 재치가 반짝이는 여성이다. 늘 당당하며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는다. 결국 메리는 상관의 조언대로 엔지니어를 신청하기에 이르지만 그녀의 바람을 꺾기 위한 조직의 치밀한 대응은 그녀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메리의 말대로 흑인여성은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세상은 결승선을 바꿔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메리는 굴하지 않고 법원에 기소하기에 이르렀으며 판사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 그녀는 직접 판사와 대면하여 설득한다. 분명 그녀에게 뛰어난 것은 재능이었겠지만 결국 그녀를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가 되게 한 것은 두려움에 굴하지 않은 정면 돌파하는 용기였음을 알 수 있다.
NASA에는 인간컴퓨터인 그녀들 외에 실제 첨단 기기들이 등장한다. IBM컴퓨터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기기들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예견한 도로시 본은 자신의 팀원들에게 프로그램을 익히게 한다. 그녀는 많은 흑인여성들이 컴퓨터로 인해 실직의 위기에 처할 것을 알고 그녀들을 일깨우고 진정한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그녀의 용기와 강인한 삶의 철학에서 지혜로운 리더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캐서린 존슨은 1961년 5월 앨런 셰퍼드의 미국 최초 유인 우주 비행인 프리덤 7 비행에서 궤도 분석을 담당했으며, 아폴로의 달 착륙선과 달 궤도를 비행하는 CSM(Command and Service Module)인 프로젝트를 돕는 계산도 맡았다. 그녀는 또 스페이스 셔틀(Space Suttle) 및 지구 관측 위성(Earth Resources Satellite)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26종의 연구 보고서에 저자 또는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는 랭글리 연구소에서 33년을 근무하고, 1987년 은퇴했다. 그리고 97세이던 2015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훈장인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받았다. 이것은 미국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민간인들만 받는 것이다.
메리 잭슨은 1950년대 엔지니어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때는 인종, 배경과 상관없이 여성 엔지니어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때이며, 아마 당시 현장에서 일하던 유일한 흑인 여성 항공 엔지니어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는 20년 동안 엔지니어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10여 개의 연구 보고서에 저자 또는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주로 항공기 주변 공기 경계층 작용에 연구의 초점을 맞췄으며, 마지막으로 극적인 커리어 변경을 감행했다.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1979년 직급이 훨씬 낮은 랭글리 연방 여성 지원 프로그램 매니저(Federal Women's Program Manager)를 맡게 되는데 이것은 NASA의 여성 전문가들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기에서 나사의 차세대 여성전문가들인 수학자, 엔지니어, 과학자를 양성하는 데 매진하게 된다.
도로시 본은 LMAL(Langley Memorial Aeronautical Laboratory) 산하 흑인 부서인 '웨스트 에어리어 컴퓨팅(West Area Computing)'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다 나중에 이 부서의 책임자로 승진했다.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관이 된 것이다.
전자컴퓨터가 개발되기 전에는 ‘컴퓨터’라는 단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이자 직책이었다 한다. 직접 수학 연산과 계산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휴먼 컴퓨터였던 셈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휴먼컴퓨터들이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끌어내었고 우리가 몰랐던 숨어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영어의 ‘figure’는 우리가 아는 인형의 피규어와 동계 스포츠인 피겨와 같은 단어이다. 여기서 피겨는 유명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계산이라는 뜻도 함께 있다. 나는 가끔 중의적 단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기도 하는데 ‘히든 피겨스’는 이러한 중의적 뜻이 있어 한층 더 흥미로왔다.
2017년부터 나는 ‘Sereis of Resurrection’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가졌다. 메인 작품은 옥수수뿌리를 가져다 거꾸로 세우고 나무의 형상을 만든 후 눈 오는 밤의 풍경을 만드느라 밀가루를 뿌린 후 사진을 찍었다. 뿌리로 사는 일은 땅위에서 사는 삶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아무리 자라도 땅 아래의 삶으로는 하늘을 볼 수도 바람을 느낄 수도 없는 일이다. 옥수수 뿌리는 죽어서야 뿌리가 뽑혔고 하늘 아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옥수수 뿌리를 가져다 나무로 세웠다. 가려져 있던 삶의 본질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뿌리로 살았던 잎으로 살았던 본질은 나무가 아니던가. 물론 보여 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이기에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캐서린과 메리, 그리고 도로시는 흑인이며 여성임과 동시에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캐서린은 “남자만 지구를 돈다는 것도 의례에 없는데요.”
우리는 ‘여성스럽다.’ 또는 ‘여성답다’라는 말을 자주 오해한다. 분명히 여성과 남성은 같지 않다. 이러한 말은 ‘연약하다’라거나 ‘예쁘다’라는 뜻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성스러운 것은 훨씬 더 광범위해서 그것은 때로 생명의 근원을 일컫기도 한다. 그것은 훨씬 부드럽고 포용적이며 강인하다. 아름다운 것은 때때로 연약함보다는 강인하고 용기 있을 때 더욱 빛이 난다. 보석이 여성과 어울리는 이유는 이것이다. 보석은 진창 속에 들었어도 오염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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