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상가의 상여가 나가는 날은 논 한 가운데 커다란 가마솥이 걸리고 먹어 본 적 없던 소고기국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모두 하얀 복색에 짚으로 엮은 다발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신 날은 하루 종일 곡소리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상을 치르는 모습은 잔칫날과 흡사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상례 품앗이는 보기가 어려워졌다. 상여가 지나는 길은 길을 가다가도 머리를 숙였고 우리는 그 구성지고 애절한 상여가락을 들으며 서로서로 ‘세이 나간다’라고 알려 줬던 기억이 있다. (경상도에서는 상여가 나가는 것을 그리 불렀다.)
상여에 대한 연구들은 그리 흔치 않았다. 상여를 연구하려면 문헌 조사 외에도 실제 상여를 찾지 않으면 어려울 성 싶다. 딱히 상여 박물관이 없으므로 나는 가까운 지역 박물관인 ‘두루뫼 박물관’을 찾기로 했다. 이 곳에는 ‘곳집’이 있다. 함께 간 지인들은 어린 시절 무서워서 근처에 가지도 못했던 마을의 ‘곳집’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두루뫼박물관’의 곳집은 예전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너와지붕과 흙담, 그리고 살대에 오래된 한지가 느껴지는 문고리가 달린 여닫이문이 있었다. 안에는 상여와 기구들이 함께.
두루뫼박물관은 현대화 물결에 밀려 조상의 손때 묻은 생활용품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한 설립자 강위수, 관장 김애영 부부가 사십 여 년 간 모아온 민속생활용품을 전시한 민속생활사 박물관이다. 남아 있는 토속적 상여가 거의 사라진 현대에 그러한 자료가 아직 보존되어 있다는 것에 설립자와 관장님께 경의를 보낸다. 초리골은 파주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마을이라 여러 번 박물관을 방문했으나 주말을 이용한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주말이라 관장님이 직접 도슨트를 자청하셨다. 그 하루에 우리는 삼국의 유물부터 조선시대 상여문화까지 두루 만나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악기와 놀이문화 등을 즐기며 마음에 들어온 것은 여름동안 진행된 ‘무엇을 담을까나’ 기획전시의 문구와 함께 눈에 들어온 상여가 놓인 ‘곳집’이었다.
우리는 음식을 담는 그릇의 모든 종류들, 의복을 담는 장과 농사일하며 사용한 여러 종류까지 두루 확인하였다. 그리고 한 평생의 최후를 담는 곳집의 상여를 보게 된 셈이다. 우리는 일찍이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어졌다. 문화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예절문화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특히 상례문화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예절문화는 없는지, 그리고 그 고유한 예절문화가 가진 의미와 담론, 그리고 나아가 이 시대에 문화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어떤 것이 있는 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2. 상례의 구성
상여소리
상여소리는 어린 시절 이후로는 듣기가 어려웠다. 언젠가 가족이 입원했던 한 병원에서 간병중에 같이 입원한 환자중, 상여소리꾼이 있었다. 자신을 정말 자랑스러워 했다. 그도 그럴것이 주변에 상여소리꾼을 본 적이 없으니 내 눈에는 거의 인간문화재로 비쳐졌다. 그리고 구슬픈 듯 구성진 상여소리를 들려주곤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찾으러 온 사람 이야기도 풀어 놓으며 은근 슬쩍 자랑도 섞어 말했다. 그때도 나는 사라져 버린 상여소리가 몹시 궁금했지만 수줍음 많은 아가씨였던 나는 그저 귀만 쫑긋할 뿐이었다.
상여소리는 보통 ‘만가’라 칭한다. “우선 처음에 상여에 관을 모실 때나 부락에서 발인제를 할 때는 <긴염불>을 노래한다. 마을을 벗으날 즈음에는 보통 빠르기의 <중염불>을 부르며, 산으로 향할 때에는 애를 끊는다 하여 <애소리>, 가는 도중에 지전을 새끼에 꽂아 상투꾼들한테 인심쓰고, 돌아가신 이에게 노자하라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하적소리>, 봉분을 다시는 <다구질소리>가 있다.”(지춘상,「진도만가」)
상여소리도 일종의 노동요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소리꾼이 앞서 선창을 메기면 뒤 이은 상여꾼들이 후렴부를 떼창으로 부르는 형식이다.
가네가네 나는간다
<후렴>에에헤 에에헤 에에헤
어이야 넘차 에에호
인제가면 언제오나(후렴)
대궐같은 이내집은
빈절같이 비워놓고(후렴)
내자석아 잘있거라(후렴)
수만삼천 마다해도
삽작밖이 북망일세(후렴)
어린 시절 들었던 만가는 구슬피 들리다가도 바람처럼 가벼이 들리기도 했다. 삶과 죽음보다는 아름다운 뒷모습이 어렴풋하게 멀어지는 기억이다.
상여
상여는 일반적으로 죽음과 관계되어 슬픔의 영역인데 반해 우리의 상여는 오락과 즐거움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상여에는 우리가 흔히 알 듯 종이꽃이 장식되는데 관장님의 설명으로는 살아 있는 것을 취하지 않고 생명을 꺽지 않는 방법으로 종이꽃을 취했다 한다. 그렇게 보니 종이꽃으로 장식된 상여가 얼마나 깊은 배려의 결정물인지를 단박에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나무 장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상례의 모노톤의 복색을 무색케 한다. 알록달록 익살스럽고 명랑하기 그지없다. 꼭두는 상여의 부속물로 인물, 동물과 식물의 형상이며 나무로 만들어져 목우라고도 한다. 꼭두의 어원에 대해 외국어 유래설, 토착어설 등 여러 가지 말이 있었으나 꼭두새벽, 꼭두배기, 꼭두머리 등과 같이 꼭두라는 말은 제일 빠른 시간이나 제일 윗부분을 일컫는 것으로, 이쪽과 저쪽 사이에 있는 경계의 영역을 가리켰다. 꼭두의 용도는 죽은 자를 보호하거나, 즐겁게 하거나, 수발을 들어준다는 등의 기능을 가졌다고 관장님은 설명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흔히 봉황이라 여기는 꼭두가 실은 닭이라는 사실이다. 봉황은 원래 ‘봉(수컷)’과 ‘황(암)’ 즉, 암수가 짝을 이루며 그 모양이 서로 다르게 생겼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봉황은 한국의 토종닭과 흡사하며 긴꼬리닭으로 보는 문헌도 있는 것으로 보아 본인의 생각에도 관장님의 설명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어둠과 아침의 경계를 소리로 나누는 닭이 망자의 길을 인도한다는 설명에 우리는 우리 상례문화의 속사정에 너무 어둡지 않나 하는 반성이 앞선다. 그리고 닭 이외에도 호랑이와 용의 모습도 보였다. 꼭두는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먼저 그 문화적 가치를 먼저 알아보게 된다. 나보다 훨씬 이전에 이 상여의 꼭두들에게 꽂힌 분이 김옥랑 관장이다. 그 분의 관심과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꼭두 이야기는 ‘꼭두박물관’에서 더 많이 알 수 있다. <꼭두, 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전시가 우리가 아닌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호평가득이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만의 독특함이 결국은 경쟁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꼭두랑한옥'을 방문 해 보는 것도 좋겠다. 무료입장이다. 필자가 꼭두랑한옥을 두 번 방문했지만 북적이는 북촌에서 꼭두랑에 들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여문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민족성
2001년 겨울 경남 남해에서 상여 하나가 서울 장한평 골동품점에 올라오게 되었다. 거기에는 나발, 대금, 북, 장고, 바라 등의 악기들을 연주하는 악공 꼭두들과 한삼을 들고 춤추는 광대 꼭두들이 꽂혀 있었다 한다. 그 외 꼭두에 관해 알아본 결과 꼭두의 종류는 안내하는 꼭두, 호위하는 꼭두, 시중드는 꼭두, 해우하기(즐겁게하기)의 꼭두들이 있다. 특히 해우하기의 재인은 독특하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건넌다는 것은 불안을 품고 있다. 이별이란 슬픔의 빛깔을 띤다. 이처럼 불안함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거나 혹은, 거꾸로 서서 연희를 하는 모습을 갖춘 재인이다. 우리의 상례문화에서 상여의 모습은 결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꼭두 문화가 일종의 순장제의 모습이라는 설도 있으나, 나는 종이꽃의 이유를 들어 말하고 싶다.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귀히 여긴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움이 배어 있는 문화가 아닌가. 그리고 또한 익살과 해학으로 망자의 가는 길 또한 즐겁고 행복하기를 원하는 남은 자들의 배려 문화 까지 더해졌다.
이처럼 우리는 지방마다 각기 조금씩 다른 모습이긴 하여도 우리는 같은 문화를 가졌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우리는 슬픔을 슬프게 말하는 것보다 희망적이고 즐거움으로 희화화하면서도 희화화 되지 않는 문화를 가졌다.
3. 맺는 글
오늘날 우리는 국제화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문화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곳곳에 문화라는 것이 존재했음에도 우리는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그 시절로 돌아가 보면 그땐 존재하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다시 끄집어내야 할 경쟁력이 아니겠는가. 잊혀진 상여문화가 누군가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되살아나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각광받고 호평이 가득했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전, <꼭두, 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는 이후 유럽 4개국의 열띤 반응에 이어 유럽 순회전 전시회까지 가졌다. 심지어 독일 라이프찌히 그라시 인류학 박물관은 주독한국문화원의 동 전시회 개최 제의에 특별 전시 홀까지 제공할 지경이었다고 전한다. 국내보다 국외에서 먼저 알아본 것이다. 씁쓸하기도 하다. 이것으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런 잊은 문화가 꼭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일이다. 우리의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그 자체로 경쟁력임을 알아차려야 할 때이다. 지인의 시리즈물 중에 ‘건물’사진이 있다. 거의 쓰러져 가거나 개발 직전에 놓인 건물들을 찍어 sns에 개제하고 있다. 이름난 설계 엔지니어답게 그의 사진은 늘 뛰어난 건축학적 소용에 닿아 있다. 그리고 안타깝노라 말 한다. 게중에는 아주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축물들이 많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치워지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을 아카이브하고 있는 이유는 안타까움이다. 마냥 새것만 바라는 우리의 눈을 조금만 더 깊이 있는 사유의 마인드를 바란다면 넘치는 일일까.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기억 속 ‘세이소리’가, 잊혀졌던 나의 문화가 살아나고자 애쓰는 것은 우리가 가진 기억 속 보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자원의이해Ⅱ」,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2017,pp.293~307
손태도(2004)「상여의_악공__광대_꼭두들에_대한_연구」한국역사민속학회(19),pp.79~109
김혜정(2006.2)「씻김굿 상여소리의 사용양상과 민요·무가의 관계」공연문화연구 제12집,pp.242~263
지양미「봉황과 긴꼬리닭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Asia-pacific Journal of Multimedia Services Cnvergent with Are, Humanities, and Sociology Vol.6, No.3 March(2016), pp.393~401
참고자료
두루뫼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꼭두박물관
한국일보
네이버 국어사전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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