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움에서 최일 작가의 "Horse and People VI "
구상과 비구상의 중간세계쯤 되는 작품이다.
월요일은 휴관이지만 권홍 관장님이 계신다.
그의 철학적 기품은 남다른 면이 있다.
갤러리 관장님이 이렇게나 철학 책을 많이 읽은 분이 얼마나 있을까. 어려워서 읽다가 지칠법한 책들을 굳이 다 읽고 까다로운 세계의 질서와 안목을 풀어주기도 하시니 들러시면 관장님의 썰을 꼭 끄집어내서 듣고 오시라.
"존재-시원으로의 회귀 2"
현대미술(조각)을 개념과 연관하여 정의할 때 가장 먼저 떠 올릴 수 있는 개념이 무한(아페이론 apeiron)과 경계나 한계에 해당하는 페라스(peras)이다.
흙을 손으로 빚어 작품을 만드는 행위. 즉 아페이론에 페라스를 주는 행위가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이었다면 현대 예술은 이와는 반대로 기존의 페라스를 지우고 아페이론으로 다가간다.
회일 작가의 사람 조각상도 기존의 페라스를 지우고 아페이론으로 나아간다.
비대해진 인간 현존재의 살들을 떼어내고 덜어냄으로 전체적으로 슬림해진 팔과 다리 그리고 몸. 골격을 보여주는 것.
이는 작가가 인간 삶의 실존이 부과한 여러 규정성에 저항하는 메타적 작업 행위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를 시원으로 회귀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것을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 자신을 잉태했으며 생산했던 대지(알)에 머리를 맞대고 허공을 향해 물구나무 자세로 서 있는 사람상이다.
물구나무로 선다는 것은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이고 그래서 남들과는 다른 세상과의 비타협. 모순 그리고 균열을 상징하며 그러므로 인간은 규정화에 대항하고 동일화 추적에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대지는 어머니의 품속이며 알의 세계며 근원과 카오스의 세계다.
그런 근원의 세계로의 회귀는 대지의 부름에 응하는 자, 니체가 디오니소스적 신의 입을 빌려 말한 물구나무 선예언자 차라투스트라이다.
글. 권홍(갤러리움 대표)
"존재 시원으로의 회귀"
땅을 머리 위에 이고 있기 때문에 동작이 불안정하다.
어머니의 시원! 그것이 땅이라는 이름의 가이아이기에 인간은 시원의 형국을 떠 받쳐 보지만 땅은 그저 인간이 디디고 서서 일어서길 원하는 것은 아닐까.
플라톤의 [타마이고스]에 나오는 데미우루고스는 조물주다. 그리고 데미우루고스는 조각가와 가장 닮아 있다. 땅은 모체를 표현한다. 아니 모체는 땅을 닮았다.
그리고 모든 어머니는 데미우루고스의 역할적 이미지가 된다. 그렇다면 조각가는 어머니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인들은 남성들에 비해 조금 더 영성을 띤 채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일 작가가 만들어낸 말은 우리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실재의 말이 아니다.
실재와는 다르게 몸통은 근육질로 비대하지만 머리와 네 다리는 상대적으로 작고 가늘다. 그리고 사람의 머리와 접속한 말의 형상은 흡사 영화 아바타를 떠 오르게 하는데 이런 부조화와 비 균형임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날렵하고 역동적인 말의 구상적 표현과 더불어 말이 가지고 있는 아주 오래된 과거의 신화성과 시원성을 상상하게끔 해준다. 태초에 조물주가 말을 창조했을 때도 아마도 이런 말들의 형상을 참조하여 구현한 것이 아닐까?
이렇듯 데미우르고스로서 최일 작가가 만들어 낸 "Horese and People VI" 조각 작품들은 사물에 대한 재현(모방)에서 벗어나 사물의 객관적 인식보다는 그것의 심층적 의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그것은 오랜 시간 말에(또는 인간에) 가해진 규정성과 동일성을 지워가며 존재의 시원으로 회귀시키려는 작가의 사유를 말의 몸짓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Horse and People VI"는 아직도 진행 중인 존재로의 회귀의 여정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여행이어서 더 절실함이 배어있다.
그 미완의 여백으로부터 우리는 숨을 쉴 수 있는 자유를 얻기를
그리고 깨어날 수 있는 저항의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최일 작가의 헤이리 갤러리움 "Horse and People VI" 전시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권홍(갤러리움 대표)
존재에 대한 물음은 모든 철학적 세계의 단골 소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과 해답에 대한 명쾌함은 줄곧 줄을 놓친 마부처럼 당황스러울 때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그러한 고민이 있기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고민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인간일 수 없는 기계의 역할쯤 되지 않을까.
말에게서 말이 태어난다. 인간에게서 인간이 태어난다.
모체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같은 그리고 또 다른 가슴이 태어나는 일인지 모를 일이다.
갤러리 움은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마을길 75
*전시는 8월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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