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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부터

[리뷰]경계해체전

by 꽃쉰 2020. 9. 3.
2017 경계해체전 리뷰

들어가며

 

이제 회화는 죽었다.”

 

카메라의 출연으로 폴 들라로슈(Paul Delarache)가 탄식하며 한 말이다.

이데아를 최대한 비슷하게 모사하고 원형의 세상을 간접적 경험의 세계로 이끄는 숭고한 의무를 담당한 것이 회화였다. 그 재현의 의무를 사진에게로 내어주는 사건은 당시에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회화는 모방으로 그치지 않고 더욱 독창적인 본연의 영역을 만들어 가며 성장하게 된다.

음악에서의 듣는 청중으로 인해 그 음악이 완성되듯 미술 작품 또한 그 작품을 알고 공감하는 일이 미술을 완성시키는 것이기에 감상의 몫은 생각보다 큰 자리매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코락갤러리는 청년작가들을 발굴하기도 하고 미술과 인문학강연을 접목시키는 일도 하면서 작가와 감상자의 배려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생동감 넘치는 갤러리다. 그리고 이 곳 에서 사람들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고 해체의 담론을 풀어내게 된다. 그리고 경계 해체의 작품을 감상하던 나는 존재의 각성에 커다란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실제를 재현하거나 예술가의 직관을 감각적으로 표현함에 있어 화구나 카메라는 하나의 표현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사진이 회화와 다른 독창적 분야임을 밝히고 있고 실제로 회화와는 다른 현실이라는 점과 RGB의 구현은 인쇄컬러가 아닌 빛의 컬러이기에 그 미묘한 차이점을 감상자들은 놓치기 일쑤이다. 경계의 해체를 기획한 갤러리 대표는 사진의 복제성에서 회화의 유니크함을 앞세운다. 각 사진들은 회화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품만 존재한다. 복제성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시회는 해체된 사진을 보여준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다시 발견하게 된다. 존재의 해체와 허구의 차이를...

 

 

 

 Sad Lucid Dreaming_홍준호

20115월 작가는 뇌출혈을 일으킨다. 당시의 CT.MRI 사진과 부친의 뇌출혈 당시 CT.MRI 사진을 오브제로 활용하여 2016Homo Ludense 시리즈를 작업했다. 그리고 그는 사진에 여러 가지 채색을 시도한다. 죽음을 알지 못했던 유년시절의 촉각적이고 원초적이던 물감놀이를 떠올리며 죽음을 알지 못했던 시간과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두 시점(삶과 죽음)을 혼합하여 트라우마를 중화시키고 극복하려 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꿈에서 완치된 아버지를 만나 기뻐했으나 깨어나 그렇지 못한 현실을 대함으로서 여전히 투병과 재활의 현실 부정에서 출발한다.

Homo Ludense 시리즈는 앤디워홀의 팝아트를 떠 올릴 수 있다. 열거된 뇌 사진들 속에 색상만 달리해 표현되었다. Sad Lucid Dreaming은 모드니즘 작가 중 루치오 혼타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루치오의 작품들 중에는 칼로 캔버스를 찢은 작업들이 많다. 그리고 한국의 임채욱 작가도 떠 올려진다. 그의 산은 프린트 되어 구겨지면서 거친 암벽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먼지.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가 떠올려 지기도 한다. 어쩌면 같은 색을 지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프린터 된 작품을 구기고 펼치는 과정에서 먼지가 되기까지를 경험한다. 허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그 먼지를 경험함으로써 가벼움을 만지게 된다. 흡사 묵주나 염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사람의 심정을 경험했노라 한다. 수년 전 본인이 뇌출혈로 사선에서 돌아 온 날, 아버지의 병력을 기억한다. 가족력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현실에 대한 부정을 내재하며 무거운 트라우마를 쥐고 살았으리라 여겨진다. 그러한 묵직한 삶의 질문들을 던지고 받으며 구기고 펴는 과정 속에서 먼지가 되어가는 유기체를 발견한다. Sad Lucid Dreaming에서는 어두운 사각의 틀 속에서 가벼움을 경험할 수 있다. 해탈이란 어쩌면 먼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은 동굴 속에서 도를 닦는 것과는 또 다른 도의 경험을 의도한다. 내게도 언젠가 깜깜한 동굴을 경험해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실체하지 않아도 실재하는 경험이다.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 수 없고 고개를 돌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워해야 하는 존재의 무시를 경험할 때가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무거워서 입을 열 수도 없었고 너무 어두워서 내 옆에 누가 서 있는 지조차도 알 수가 없는 시간이었다. 프린터 작품을 구기듯 나 또한 그 일그러졌던 순간들을 열심히 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까만 틀 속에 하얗게 먼지가 날고 있다. 우주,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다.

 

 

무역센터로부터_라인석

누구나 시각적 예술이라 생각하는 사진에 대해 작가는 촉각의 사진을 말하고 있다. 빛이 만지면서 만들어지는 사진을 통해 우리는 디지털로 이루어진 세계를 바라볼 뿐이라 스스로 이 기괴한 영역을 넘어서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사진을 만지기로 한다. 무역센타를 카메라로 찍고 프린터를 통해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는 프린트 된 그 이미지를 손으로 만지기로 한다. 그리고 이리저리 펼치고 흔들다 구부린다. 그 다음 다시 구부러진 무역 센터를 발견한다. 그래서 다시 사진을 찍는다. 그의 피사체는 무역센터였다가 다시 사진으로 옮겨간다.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휘어 보이게 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그리고 그는 미리 준비된 프린트 용지를 사포질로 문질러서 더욱 내밀한 터치를 감행한다. 그리고 그 위에 존재했으나 존재가 아닌 존재를 프린팅 한다. 무역센터가 휘어졌다. 사진은 현실인가? 실재하는가? 존재의 의미가 불확실한 이미지를 생성함으로써 실재와 실체의 간극을 쪼개고 존재의 부정을 부정함으로써 장자무위자연을 경험한다. 작가는 그 자신조차도 상당히 자유로운 생각으로 나부끼듯 작업을 한다. 모네가 루앙대성당을 빛에 따라 달라지는 연작을 그린 것처럼 빛이 아닌 작가의 개입으로 현대 건축물의 변화되는 모습을 담아 6작품을 만들어냈다.

2012‘IMAGE2IMAGE’ 작업에서 연필이미지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어느 것이 진짜인지 어느 것이 사진인지 몰라 마치 수학을 하듯 개념을 캐묻고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모두 시뮬라크르였다. 마치 열심히 문제를 풀었더니 답이 ‘ZERO’였던 기분이 들었다. 그 다음 라는 작품은 한결 이해가 쉬워졌다. 자는 규칙과 제도의 기준이 되는 의미로 통하지만 라인석의 는 모두 13센티이면서 모두 13센티가 아닌 였다. 작가는 실제의 자를 사진으로 재현한 뒤, 프린트 과정에 개입하는 방법으로 척도로서의 라는 이미지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통해 실제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사진의 특징은 세계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에 있다. 대상을 만지고 나오는 빛을 담아내는 작업이 사진이다. 사진이 세계를 만지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직접적으로 만지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가능케 했다. 보는 사진에서 만지는 사진으로의 경계를 경험함으로써.

 

 

여행중휴식(김형기)

김형기 작가는 영국 유학시절부터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안목을 키워 오며 15년간을 한국과 영국에서 그룹전시와 창작활동에 참여하다 2015년 처음으로 개인전 생명을 열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공대출신 사진가로도 알려진 김공수교수다.

그의 작품은 사진을 기본으로 채색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사실은 이러한 기법자체는 전혀 새로울 수 없는 기법이기도 하다. 1세기전 유리원판 필름을 사용할 때 유리원판위에 채색을 하는 방식이 이미 사용된 터다. 게다가 사진 위에 색을 입힌다는 자체는 국내외 여러 작가들이 인용하는 방법에 불과할 찌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 대청마루 안방 방문 위에 걸린 월남사진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아버지 사진이다. 월남의 거리 풍경 사진인데 하늘은 비취색에 가까운 푸른색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직도 나는 그 특별한 파란 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 사진도 채색된 사진이었다. 하늘도 풀도 색이 칠해져 있었다. 사진 뿐 아니라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 아이들의 미술활용에서도 쉽게 만날 있는 방법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서 오는 독특함 보다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해 시선을 맞추고 싶다. [사진 3]은 그의 유방암진단 사진이다. 그러나 내 시야에 들어오는 암()은 생명을 죽이는 암이 아닌 생명을 보듬고 살리고 있는 암()이다. 노란 물고기와 우주와 해초와 꿈과 유년의 상상만이 가득하다. 작가 자신의 유방암 판정 사진을 오히려 즐기려 하고 있다. 그는 꿈을 꾼다. 빌어먹을 유방암을 무시한 채 그림 속 소녀의 맑고 힘찬 생명력에 힘입어 커다랗고 노란 물고기를 낚으며 상상을 낚는 중이다. 사진은 현실을 체험하지만 작가는 현실을 고뇌가 아닌 희망으로 재창조 하고 있다. 어쩌면 현실은 날마다 암을 만나는 날 일 찌도 모르겠다. 그런 체험적이고 기록의 사진을 보는 방법에서 읽고 만드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은 마음으로라야 가능하리라. 덕분에 나는 눈으로 보는 현실을 마음으로 녹이는 방법을 알 듯도 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07년 아빠의 사진에는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으로 보아 비오는 산길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빠의 기술 부족인지 도구의 표현 부족인지 비는 표현되지 않았다. 2007년 어느 날 비가 오던! 산길에서 남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을 아빠가 암실에서 직접 인화 하고 10년을 뛰어넘어 2017년 비가 내리고 있는 현시점을 표현 한 시 공 간을 뛰어 넘는 작업이다. 몇 천 장씩 쌓여 있는 아빠의 사진을 보며 몇 년 전부터 예술가로서 고민하며 째려보며 나온 작업물의 결과이다. 단지 사람들은 사진에 그림을 그렸네. 뭘 표현 했네. 라고 하지만 그 이상의 마음의 교류와 시 공 간 초월의 작업인 것이다. 사진은 비가 왔었다. 그러나 내 사진은 비가 온다.“ 그의 작업에서 마음을 느낀다. 사랑을 느낀다. 마음도 사랑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아닐는지.

 

맺음 글

  사실 스트레이트 사진가들의 비평으로 살롱사진이 퇴색되어 간 듯도 하다. 경계의 해체가 살롱사진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굳히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경계를 세우고 가르고 찢는 것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냥 예술이다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는가. 조각은 꼭 3차원 입체여야 하는가?. 뒤샹이 길에서 변기하나 주워다 전시장에다 놓고 작품명을 이라 지었다. 게다가 직접 매체에 기고까지 했다. 예술이란 기괴한 일인가? 나는 예술이란 앞에 달린 두 눈 외에 눈이 하나 더 생기는 일로 여겨진다. 내 앞에 절벽이 있다면 내 등에 날개를 돋게 하는 힘이 예술이 아닐는지....

남북이 대치중에 있다. 남북으로 자른 것도 모자라 동서로 나누고 좌우로 나누고 이리 저리 가르고 나누는 일에 열중인 대중의 모습 속에서 암이 보인다. 휘어진 존재의 부정이 보인다. 다 무너져서 먼지가 되면 가벼워질까? 경계의 해체는 상상이나 사유의 경험을 넘어 신념의 각성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현 상황을 뜨겁게 탐구하고 활짝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문을 열수는 없는 것일까. 하루 종일 남의 탓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집 문을 열고 내 손으로 만져가는 분단의 해체 작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

 

 

 

 

 

 

 

참고자료

 

에코락갤러리[사진]

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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